“읽씹도 없던 시대, 사랑은 더 어려웠다! 신명연 《애춘화첩》 이야기”
“읽씹도 없던 시대, 사랑은 더 어려웠다! 신명연 《애춘화첩》 이야기”

민화를 좋아하다 보면 호랑이의 위엄에 감탄하고, 봉황의 화려함에 눈길을 빼앗기고, 책가도의 디테일에 놀라곤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이런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조선 사람들도 연애를 했을까?"


생각해 보면 참 웃긴 질문입니다. 사람 사는 세상인데 사랑이 없을 리가 없지요.
다만 차이가 있다면 지금은 카카오톡으로 "뭐 해?"를 보내고, 조선시대에는 편지를 쓰거나
몰래 눈빛을 주고받았다는 정도일 것입니다.


그런 조선 사람들의 솔직한 감정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 바로 신명연의 《애춘화첩》입니다.
국립문화유산 자료에 따르면 이 작품은 조선시대 화가 신명연이 그린 화첩으로, 종이에 그려졌으며 크기는 세로 32cm, 가로 31cm 정도입니다. 현재는 고(故) 이건희 회장의 기증품 가운데 하나로 알려져 있으며 소장품 번호는 건희3674입니다.
하지만 숫자와 기록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림 속 사람들의 표정입니다.
왜냐하면 그 표정들이 너무나도 현대적이기 때문입니다.



《애춘화첩》을 보고 있으면 가끔 이런 생각이 듭니다.
"이거 완전 연애 프로그램 아닌가?"
좋아하는 사람이 지나가면 괜히 옷매무새를 고치고,
눈이 마주치면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상대방이 웃어주면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아집니다.
200년이 지나도 사람 마음은 그대로인 모양입니다.
만약 조선시대에 스마트폰이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아마 이런 장면이 펼쳐졌을 것입니다.
"그분이 제 방문을 자꾸 보세요."
"좋아요는 눌렀습니까?"
"아니요."
"그럼 아직 모릅니다."
"하지만 눈이 마주쳤어요."
"그건 길이 좁아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
연애 상담 전문가도 아닌데 주변 사람들이 괜히 훈수를 두는 모습까지 상상됩니다.

신명연은 사람의 마음을 그린 화가였다
많은 화가들이 풍경을 그리고 꽃을 그리고 산수를 그렸습니다.
하지만 신명연의 그림을 보다 보면 그는 사람의 감정을 그리는 데 특별한 재능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눈빛 하나에도 이야기가 있고,
몸의 방향 하나에도 감정이 담겨 있습니다.
요즘 영화감독들이 배우에게
"감정을 눈으로 표현해 주세요"
라고 주문하듯,
신명연 역시 붓으로 그런 연출을 해냈습니다.
그래서 그림을 보고 있으면 설명이 없어도 내용을 짐작하게 됩니다.
마치 무성영화를 보는 기분입니다.
대사가 없는데도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조선 사람들도 엄청 바빴다
우리는 조선시대를 떠올리면 늘 근엄한 선비를 생각합니다.
하지만 《애춘화첩》을 보면 조금 생각이 달라집니다.
그들도 누군가를 기다렸고,
누군가를 좋아했고,
괜히 혼자 상상하며 행복해했고,
또 실망하기도 했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프로필 사진 바꾸고,
스토리 올리고,
상대방 반응을 기다리는 것과 비슷했을지도 모릅니다.

다만 스마트폰 대신 부채를 들고 있었다는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애춘화첩》 속 인물들이 갑자기 살아나 말을 건다면 아마 이런 이야기를 할 것 같습니다.
"후손들아, 너희만 연애 힘든 거 아니다."
"우리도 밤새 뒤척였다."
"우리도 상대방이 나를 좋아하는지 궁금했다."
"우리도 혼자 결혼식장까지 상상했다."
듣고 있으면 왠지 웃음이 납니다.
200년 전 사람도 지금 사람도 결국 같은 고민을 하고 살아가는 것이니까요.


저는 《애춘화첩》의 가장 큰 매력이 화려한 기교보다 사람 냄새라고 생각합니다.
박물관 유리장 안에 전시된 작품이지만 전혀 딱딱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친구의 연애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친근합니다.
그래서 이 그림은 단순한 고미술 작품이 아니라 조선 청춘들의 감정 기록장처럼 느껴집니다.
시간은 흘렀지만 사랑 때문에 웃고 울고 설레는 마음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애춘화첩》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연애는 시대가 변해도 늘 어렵다."
그 말이 너무 맞아서 우리는 또 한 번 웃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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