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 구석에서 "나 좀 봐줘..."라며 아련한 눈빛을 보내고 있는 일본 에도 시대의 화조도 병풍
가을·겨울 컬렉션인데 봄·여름은 어디 갔냐고? ( 반쪽짜리 화조도 이야기)
온갖 민화와 옛 그림의 매력에 푹 빠져 살며, 붓끝으로 조선과 에도를 오가는 야매(?) 화가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씹고 뜯고 맛볼 작품은 국립중앙박물관 구석에서 "나 좀 봐줘..."라며 아련한 눈빛을 보내고 있는 일본 에도 시대의 <화조도 병풍(오른쪽 폭)>입니다. 아니, 이름부터가 벌써 '오른쪽 폭'인 게 아주 눈물 없인 볼 수 없는 막장 드라마의 서막 같지 않나요?

"여보, 짝꿍은 어쩌고 혼자 왔어?" : 강제 이별 당한 병풍의 사연
자, 이 병풍의 스펙을 보면 가로가 무려 371cm에 달하는 거대한 녀석입니다.
그런데 내용을 보니 국화, 대나무, 매화가 그려져 있네요. 동양화 좀 보신 분들은 딱 감이 오시죠? 맞습니다. '가을과 겨울'입니다.
"원래 이런 병풍은 '사계절 치트키'라 봄·여름·가을·겨울이 다 있어야 정상이거든요? 근데 이 녀석은 지금 가을이랑 겨울만 있어요. 네, 맞습니다. 봄이랑 여름을 담당하던 '왼쪽 짝꿍'은 기나긴 역사 속에서 가출했거나, 어디선가 솔로로 독립해 살고 있는 게 분명합니다."
지금 이 병풍은 마치 패딩이랑 코트만 잔뜩 들어있는 반쪽짜리 옷장 같은 상태인 거죠. 사라진 봄·여름 병풍아, 너 지금 어디서 뭐 하니? 보고 싶다...
2. "이게 바로 에도 스타일 마초 액션!" : 도끼로 팍! 부벽준 기법
그림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꽃과 새가 그려져 있어서 되게 여리여리할 것 같지만 웬걸? 바위랑 나무 표현이 아주 거칠고 상남자(?)스럽습니다.
여기서 쓰인 기법이 바로 부벽준(斧劈熢)인데요.
한자가 어렵다고요? 쉽게 말해서 ‘도끼(斧)로 나무를 쪼갠(劈) 듯한 거친 느낌’을 주는 수묵화 기법입니다.
조선 민화의 매력: "허허, 호랑이도 웃고 까치도 웃고 우리 모두 다 함께 웃어봐요~" 하는 둥글둥글 해학미.
이 에도 병풍의 매력: "어이- 내 묵직한 '진한 농묵(짙은 먹물)' 맛 좀 볼래?" 하는 무로마치 시대 선배들의 거친 액션 카리스마.
꽃그림인 줄 알고 다가갔다가, 도끼로 내리친 듯한 힙하고 락킹(Rocking)한 바위 표현에 압도당하는 반전 매력이 있는 작품이랍니다. 역시 옛날이나 지금이나 '반전 매력'이 최고예요.

만약 이 그림을 그린 에도 시대의 무명 작가가 타임머신을 타고 2026년 오늘날로 온다면,
아마 인스타그램에 이렇게 피드를 올렸을 겁니다.
🛠 @Edo_Artist_99: "오늘도 도끼 기법(부벽준) 개빡세게 넣었다... 크하, 농묵 미쳤다.
근데 님들, 제 봄여름 버전 병풍 가져가신 분 DM 좀 주세요.
짝을 잃어서 마음이 시립니다. #협찬환영 #솔로스타그램"
비록 반쪽만 남은 쓸쓸한 신세지만, 그 덕분에 우리는 사라진 봄과 여름의 새들은 얼마나 더 화려하고 예뻤을지
상상하는 재미를 얻었습니다. 완벽한 것보다 살짝 빈틈이 있을 때 더 매력적인 법이잖아요?
다음에 박물관에서 이 <화조도 병풍>을 마주친다면, 슬쩍 윙크를 건네주세요.
"너, 짝꿍 잃어버려서 속상하겠구나? 그래도 거친 매력은 살아있네!" 하고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