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없이 일본 정복한 썰 푼다" : 1748년 조선 화원의 우당탕탕 에도 브이로그, <사로승구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2017년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안녕하세요, 독자 여러분! 오늘 여러분의 가이드를 맡은 조선 영조 시절의 프로 소환러이자 도화서 소속 화원, '이성린(李聖麟)'이라고 합니다.
요즘 다들 스마트폰 하나 들고 일본 여행 가셔서 인스타 스토리에 "오사카 도톤보리 존예~" 하면서 사진 올리시죠? 근데 그거 아세요? 지금으로부터 약 280년 전인 1748년, 저도 왕명(王命)을 받고 목숨 걸고 바닷길 건너 일본 에도(지금의 도쿄)까지 원정 브이로그를 찍으러 다녀왔습니다.
스마트폰도, 카메라도 없던 시절이라 제 손가락과 붓이 곧 '아이폰 15 프로'였죠. 제가 그린 30장짜리 눈물겨운 일본 유람기, <사로승구도(槎路勝區圖)>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탈탈 털어드립니다!




"제목이 왜 이래?" – 뜻 알고 보면 완전 인스타 갬성
처음에 이 그림 제목 들으면 "사로... 뭐? 사로잡는 구도인가?" 하실 겁니다. 한자 풀이를 해보면 완전 낭만 치사량입니다.
- 사(槎): 뗏목(혹은 배)을 타고
- 로(路): 가는 길에 만난
- 승구(勝區): 끝내주게 멋진 경치
- 도(圖): 그림책!
즉, 요즘 말로 바꾸면 [유람선 타고 가며 찍은 일본 핫플레이스 대방출. zip] 되시겠습니다.





글 한 자 안 적은 이유? "내 그림은 '쇼츠(Shorts)'니까!"
이 그림책에는 각 장면 제목 말고는 글씨가 단 한 자도 없습니다. 후대 학자들이 "어라? 왜 글이 없지? 언제 그린 거야?" 하면서 제 일기장이랑 조선왕조실록을 뒤지며 번호 맞추기를 하느라 고생 꽤나 했다더군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되느라 고생하셨습니다, 후손 여러분!)
글을 왜 안 썼냐고요? 여러분, 인스타 릴스나 틱톡 볼 때 설명 글 길면 읽으세요? 안 읽잖아요! "말해 뭐 해? 일단 내 그림 비주얼부터 감상해 봐!" 하는 제 근거 있는 자신감이었습니다.
상권 vs 하권: 반전 매력의 30부작 대서사시





이 화첩은 총 30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앞뒤 장의 분위기가 완전히 다릅니다. 거의 부캐(부캐릭터) 수준이죠.
"조선 선비의 진지한 내셔널 지오그래픽"
부산항에서 배 타고 출발해서 일본 돗토리, 교토 등을 지나갈 때입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저는 조선의 정통 화가로서 가오(?)를 지켜야 했습니다. 그래서 아주 엄격, 근엄, 진지하게 조선 정통 화풍으로 일본의 대자연을 그렸습니다. 바위 하나, 파도 하나에 "크으, 취한다!"를 외치며 그린 웰메이드 실경산수화 파트입니다.
"에라 모르겠다! 일본 축제존잼, 브이로그 시작!"
에도에 가까워질수록 제정신줄이 살짝 풀리기 시작합니다. 산이랑 바다만 그리려니 지루하잖아요? 그래서 하권부터는 카메라 렌즈를 완전히 서민들의 삶으로 돌렸습니다.
일본 애들 포구 모양은 어떻게 생겼는지 구경하고,
걔네들 옷차림, 노는 모습, 풍속화, 그리고 축제 행렬까지 싹 다 그려 넣었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풍경 사진 찍으러 갔다가
일본 현지인 맛집이랑 길거리 버스킹 찍어온 셈이죠. 다채롭고 아주 골 때리게 재밌습니다.





"솔직히 고백합니다: 뽀샵과 상상력의 컬래버레이션"
후대 미술 평론가분들이 제 그림을 보고 "와, 포구 형태나 건물이 당시 실제 지도랑 딱 들어맞네! 고증 대박!" 하고 찬사를 보내시더라고요. (감사합니다, 셰셰.)
그런데 말입니다... 저도 인간인지라 낯선 이국땅에 가니까 지형이 헷갈리는 겁니다. 가끔 길을 잃거나 배 위에서 멀미하느라 제대로 못 본 곳은 어떻게 했을까요?
'음... 대충 조선에 있는 북한산처럼 그리자. 어차피 산이 다 거기서 거기지 뭐!'
하면서 제 맘대로 조선 스타일을 슬쩍 끼워 넣기도 했습니다. 전문가들이 "곳곳의 지형에서 한계를 보여준다"라고 하던데... 에이, 원래 여행 사진은 필터 발, 보정 발, 그리고 약간의 왜곡이 들어가야 제맛 아닙니까?





* 280년 전 이 화백이 던지는 한마디 *
왕복 수천 킬로미터의 거친 바닷길을 지나며 붓이 부러져라 그린 이 30폭의 그림이, 2017년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여러분, 인생이라는 거친 바다를 항해하다가 지칠 때, 280년 전 목숨 걸고 일본 바다를 건너며 꿋꿋하게 이국땅을 기록했던 저를 떠올려주세요. 그리고 제 <사로승구도>처럼, 여러분의 하루하루도 가끔은 진지하게, 가끔은 유쾌한 짤방처럼 채워나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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