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재 정선, 중국 폭포를 보고 왜 금강산 생각이 났을까? 조선판 자연 다큐의 끝판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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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이건 물이 떨어지는 게 아니라 거의 천둥이 내려오는 수준인데?"
아마 겸재 정선이 지금 살아 있었다면 「여산폭포도」를 그리며 이런 말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덕수5597호 「여산에 있는 폭포」는 이름 그대로 중국 장시성 주장 서남쪽에 자리한 여산의 석문산 폭포를 그린 작품이다.
여산은 중국 사람들에게도 특별한 산이다.
옛날 주나라 때 광속이라는 사람이 이곳에 숨어 살았다고 한다. 그런데 조정에서 사람을 보내 찾아가 보니 이미 신선이 되어 하늘로 날아가 버리고 집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고 한다.
"아니, 사람 찾으러 갔더니 집만 남았다고?"
결국 사람들은 빈집만 남은 산이라 하여 '여산(廬山)'이라고 불렀다.
한마디로 중국판 "신선이 살다 간 전설의 장소"인 셈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이 있다.

정작 겸재 정선은 여산에 직접 가 본 적이 없다.
"아니? 안 가봤는데 어떻게 그렸다고?"
바로 여기서 겸재의 상상력과 천재성이 폭발한다.
이 그림은 당나라 시인 이백의 명작 「망여산폭포」를 바탕으로 그린 그림이다.
이백은 여산 폭포를 바라보며 이렇게 노래했다.
"은하수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듯하다."
요즘 말로 하면,
"이 폭포 실화냐?"
수준의 감탄이다.

그리고 겸재는 그 시를 읽으며 머릿속에 거대한 자연의 장면을 떠올렸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이 있다.
겸재가 그린 여산은 사실 중국의 여산이면서 동시에 조선의 산이다.
구도를 보면 금강산의 구룡폭과 철원의 삼부연을 떠올리게 한다.
즉, 중국의 명승지를 그리면서도 조선 사람이 가장 감탄했던 폭포의 느낌을 함께 담아낸 것이다.
그래서 「여산폭포도」는 중국 여행기가 아니라 겸재 정선만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된 거대한 자연 다큐멘터리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암벽을 표현한 날카로운 수직준은 겸재 특유의 필법이다.
바위가 마치 칼로 쪼개 놓은 것처럼 날카롭고 힘차다.
거기에 쏟아지는 폭포는 거의 롤러코스터급 속도로 떨어진다.
보고 있으면 "물살아, 잠깐만 쉬어 가자!"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다.
그런데 그림 아래쪽에는 겸재의 감탄사가 적혀 있다.
"장송은 울창하여 천 명의 병사가 줄지어 선 듯하고, 성난 폭포는 급히 쏟아져 만 마리의 말이 울부짖는 것 같도다."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 웃음이 났다.
겸재 선생님, 표현력이 너무 과감하신 것 아닌가.
소나무가 천 명의 군대라니.
폭포 소리가 만 마리 말의 울음소리라니.
하지만 그림을 가만히 바라보면 정말 이해가 된다.
소나무들은 늠름하게 서 있고, 폭포는 당장이라도 "콰아앙!" 소리를 내며 튀어나올 것 같다.
마치 영화관 4DX 효과를 그림 한 장으로 구현한 느낌이다.
그래서 나는 이 그림을 보며 생각했다.

겸재가 말한 여산은 단순히 중국 장시성 주장 서남쪽의 석문산이 아니었다.
그가 말한 여산은 자연이 가진 압도적인 힘과 인간이 느끼는 경외심 그 자체였다.
그리고 그 풍경 속에는 중국의 명산과 금강산, 삼부연이 한데 어우러져 있었다.
결국 겸재는 중국을 그린 것이 아니라 자연 앞에서 감탄하는 인간의 마음을 그린 것이다.
300년 전에도 사람들은 멋진 풍경을 보면 입이 벌어졌고,
오늘날 우리는 사진을 찍으며 외친다.
"우와! 여기 진짜 미쳤다!"
시대는 달라졌지만 감탄하는 방법만 조금 달라졌을 뿐이다.
그리고 아마 겸재 정선도 옆에서 조용히 웃으며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거봐, 내가 그때부터 좋다고 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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