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의 허련이 보여주는 흑백 요리사 스타일"~~《소치묵묘첩》
하이퍼 리얼리즘 버전: "노년의 허련이 보여주는 흑백 요리사 스타일"

#모란_미슐랭_3 스타 #물감_기반_화가들_기죽이는_먹방_드로잉
이번엔 조금 더 맛깔나는 비유로 가보겠습니다. 19세기 호남 화단의 절대강자 허련 선생은 올라운더 플레이어였습니다. 산수화, 인물화, 사군자는 물론이고 파초까지 못 그리는 게 없는, 요즘으로 치면 ‘예능, 드라마, 영화 다 1등 찍는 사기캐 연예인’이었죠. 그런 그가 인생 말년에 꽂힌 필살기가 있었으니, 바로 ‘묵모란(墨牡丹)’이었습니다. 화려한 채색 모란의 시대를 뒤로하고, 오직 순수 100% 흑미… 아니, 먹물로만 승부를 보겠다고 선언한 것이죠.

이 첩의 정식 명칭은 《소치묵묘첩》. 종이에 먹으로 그렸고, 세로가 26cm라 아주 콤팩트한 굿즈입니다. 보통 나이가 들면 눈도 침침해지고 화려한 색깔이 좋아지기 마련인데, 허련 아저씨는 노년에 오히려 먹의 깊이에 집착했습니다. 60단, 70단이 된 요리 거장이 재료 본연의 맛을 내기 위해 간장으로만 간을 맞추는 ‘흑백 요리사’의 장인 정신과 일맥상통합니다. 화려한 색감 뒤에 숨지 않고 오직 붓끝의 압조절과 물 조절로만 앙큼하고 탐스러운 꽃송이를 피워낸 것입니다.

#싱크율_0프로의_ 시와_그림 #조선시대_싸이월드_감성_폭발
이 화첩을 계속 보게 만드는 마성의 포인트는 바로 ‘불일치의 미학’입니다. 그림마다 모란의 배치와 모습이 다 달라서 지루할 틈이 없는데, 상단에 적힌 당나라, 송나라 시인들의 시가 아주 골 때립니다. 모란과 관련된 시인 건 맞는데, 밑에 그려진 그림과 내용이 통하지 않아요.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그림은 ‘바람에 살짝 흔들리는 도도한 모란’을 그려놓고, 위에는 ‘어제 이웃집 김 씨랑 모란꽃 아래서 막걸리 마셨더니 취하네’ 같은 뉘앙스의 중국 시를 간지 나게 써놓은 거죠. 허련 선생의 작품 중에는 이런 식으로 ‘중국 시 치트키’를 쓰는 경우가 참 많았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힙해 보이니까요! 요즘 카페 벽면에 영어로 ‘Yesterday is history, tomorrow is a mystery’ 같은 문구 잔뜩 적어놓는 거랑 똑같습니다. 해석해 보면 카페 아메리카노랑 1도 상관없는 말이지만, 일단 흘려 쓴 영어가 주는 간지가 있잖아요? 허련 선생도 모란꽃 향기에 어울리는 화려한 글씨체로 중국 시를 얹어서 작품의 ‘인텔리 감성’을 한층 업그레이드시킨 겁니다.

#안방에서_즐기는_조선_최고의_연작 #동원2170_기증자님_그랜절_받으세요
결론적으로 《소치묵묘첩》은 허련이라는 아티스트가 날린 ‘노장의 품격 있는 카운터펀치’입니다. 네 면의 분할 화면이 자석처럼 착 붙어 하나의 파노라마를 이루는 연출력, 그리고 먹색 하나만으로 오색빛깔의 찬란함을 압도하는 다채로움은 그야말로 수작 중의 수작입니다.

기증왕 동원 이홍근 선생이 이 보물을 고이 소장해 주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이 조선 시대 힙스터의 흑백 감성을 영영 모를 뻔했습니다. 맞춤법과 서체의 예술성이 칼같이 살아있는 이 화첩을 보고 있으면, 진짜 멋은 겉포장(색깔)이 아니라 알맹이(먹색)에 있다는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이번 주말에는 국중박에 가서 400년 뒤의 후손마저 홀려버린 허련 선생의 ‘블랙 모란’을 보며 진정한 정신적 플렉스를 경험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소치묵묘첩 #허련 #소치허련 #국립중앙박물관 #동원2170 #묵모란도 #묵모란 #조선시대미술 #호남화단 #진도출신 #추사김정희제자 #부귀영화 #흑백감성 #모노크롬 #인스타분할피드 #조선힙스터 #중 국시치트키 #감성파괴 #불일치의 미학 #사마광 #백거이 #박물관투어 #문화재덕질 #동원이홍근 #기증품 #서화첩 #예술장인 #먹의 농담 #파노라마그림 #블랙에디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