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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원의 첫걸음 삼경(三景)의 조화: 연못, 정자, 그리고 기암괴석

damda0816 2026. 5. 19. 00:03

 

 

효심으로 일군 기적, 예원의 첫걸음을 떼다

예원의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16세기 명나라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조정의 고위 관료였던 반윤단(潘允端)은 노년의 아버지를 위해 이 정원을 짓기 시작했다. 고향을 그리워하고 편안한 여생을 보내기를 바라는 아들의 마음, 즉 '기쁘게 부모를 공양한다'는 뜻의 '예(豫)'를 담아 이름을 지었다. 무려 2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가산을 탕화하다시피 하며 지은 정원이건만, 야속하게도 그의 아버지는 완공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고 반윤단 자신도 이곳에서 그리 오래 머물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원은 살아남아 오늘날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인생의 덧없음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겨진 아름다움에 대하여.

정원에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하늘을 향해 날카롭게 치켜 올라간 처마선이다. 마치 곧이라도 날아오를 듯한 용의 형상을 한 담장(용벽, 龍壁)이 정원 전체를 휘감고 있다. 황제만이 사용할 수 있었던 오조룡(발가락이 5개인 용)의 눈을 피해, 발가락을 세 개나 네 개로 교묘하게 조각해 화를 면했다는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옛 사람들의 위트와 생존을 위한 지혜에 미소 짓게 된다.

 

 삼경(三景)의 조화: 연못, 정자, 그리고 기암괴석

중국 전통 정원의 핵심은 '보행이동에 따른 경치의 변화(이보환경, 移步換景)'에 있다. 한 걸음 옮길 때마다, 모퉁이를 돌 때마다 전혀 새로운 풍경이 펼쳐진다. 예원은 이 법칙을 가장 완벽하게 구현한 공간이다.

웅장함과 기괴함의 미학, 대가산과 태호석

정원 초입에 위치한 대가산(大假山)은 명대 최고의 정원 설계가 장남양이 쌓아 올린 인공 산이다. 높이 14미터에 불과하지만, 좁은 공간 내에서 첩첩산중의 웅장함을 느끼게 하는 스케일의 반전이 숨어 있다.

하지만 예원 석조 예술의 백미는 단연 옥령롱(玉玲瓏)이다. 중국 3대 명석 중 하나로 꼽히는 이 기암괴석은 태호(太湖) 바닥에서 오랜 세월 물살에 깎여 만들어진 정교한 수석이다. 구멍이 무수히 뚫린 이 돌의 매력은 독특하다. 돌 밑에서 향을 피우면 모든 구멍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위에서 물을 부으면 모든 구멍으로 물이 흘러내린다고 한다. 기이하고도 영롱한 자태 앞에 서 있으면, 자연의 불규칙함 속에서 완벽한 아름다움을 찾아내던 옛 문인들의 탐미주의적 시선이 느껴진다.

물 위에 띄운 풍류, 연못과 정자

돌들이 정원의 뼈대를 이룬다면, 그 사이를 흐르는 연못은 정원의 혈맥이다. 옥령롱을 지나 만나는 득월루(得月樓)와 함벽루(含碧樓) 앞의 연못에는 비단잉어들이 붉은 꽃잎처럼 흩어졌다 모이기를 반복한다.

연못 위에 지어진 정자들은 단순히 쉬어가는 곳이 아니다. 정자의 창문은 그 자체로 하나의 액자가 된다. 사각형, 팔각형, 혹은 부채꼴 모양의 창을 통해 내다보는 바깥 풍경은 철저하게 계산된 하나의 '살아있는 산수화'다. 프레임 안으로 들어오는 대나무 잎사귀의 흔들림, 연못에 반사되는 햇살을 바라보고 있으면, 시간은 숫자의 흐름을 멈추고 계절의 감각으로만 다가온다.

미로 속에서 발견하는 내면의 고요

예원의 매력은 공간을 쪼개고 연결하는 집요함에 있다. 그리 넓지 않은 대지(약 2만 평방미터)임에도 불구하고, 골목 같은 복도와 문(동문, 洞門)을 지나다 보면 마치 거대한 미로 속에 들어온 듯한 착각에 빠진다.

특히 화려한 조각이 돋보이는 삼수당(三穗堂)과 앙산당(仰山堂)을 지나 정원의 깊은 곳으로 들어설수록, 공간은 점점 더 내밀해진다. 화려함을 뽐내던 초입과 달리, 안쪽의 정원들은 사색을 위한 공간에 가깝다. 담장에 뚫린 다양한 모양의 누창(漏窗)을 통해 건너편 풍경이 살짝 비치는데, 이는 공간을 완전히 단절하지 않으면서도 깊이감을 주는 절묘한 건축 기법이다. 볼 수 있으되 가질 수 없고, 감추어져 있되 드러나는 것. 정원은 우리에게 비움과 채움의 미학을 온몸으로 깨닫게 한다.

시대를 건너뛰는 위로, 예원이 지금 우리에게 주는 의미

오늘날 예원은 전 세계에서 몰려든 관광객들로 늘 붐빈다. 스마트폰 카메라 셔터 소리가 끊이지 않고, 정원 바로 바깥에는 스타벅스와 하겐다즈 매장이 화려한 네온사인을 빛내고 있다. 누군가는 전통의 순수함이 상업주의에 퇴색되었다고 아쉬워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바라본 예원의 가치는 바로 그 '대비(Contrast)'에 있었다. 21세기의 가장 치열한 비즈니스 도시 한복판에, 400년 전의 정원이 온전히 살아남아 있다는 사실 자체가 기적에 가깝다. 만약 상하이에 푸동의 초고층 빌딩들만 있었다면 이 도시가 얼마나 차갑고 삭막한 첨단의 기계로 기억되었을까. 반대로 예원만 있었다면 그저 박제된 과거의 유적지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초현대적인 풍경과 초연한 옛 정원의 공존. 예원 바깥의 소음이 커질수록, 정원 내부의 고요는 더욱 극적으로 다가온다. 옥령롱의 구멍 사이로 저 멀리 상하이 타워의 실루엣이 겹쳐 보일 때, 묘한 전율이 인다. 과거와 현재가 단절되지 않고 서로를 품어 안고 있는 모습이야말로 상하이라는 도시가 가진 진짜 매력이 아닐까.

바쁘게 돌아가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자신만의 '예원'이 필요하다. 바깥세상이 아무리 시끄럽고 빠르게 변할지라도, 문 하나만 닫으면 나만의 속도로 숨 쉴 수 있는 마음의 정원 말이다. 반윤단이 아버지를 위해 지었던 이 고요한 안식처는, 이제 시공간을 뛰어넘어 지친 현대인들의 마음을 달래주는 거대한 위로의 공간으로 기능하고 있다. 상하이를 방문한다면 화려한 야경에 감탄하기 전에, 먼저 예원의 붉은 담장 속으로 걸어 들어가 보기를 권한다. 그곳에서 당신은 잃어버렸던 내면의 고요와 조우하게 될 것이다.

붉은 담장 너머로 흐르는 명조(明朝)의 시간, 상하이 예원(豫園)을 거닐다

초고층 빌딩들이 하늘을 찌를 듯 당당하게 서 있는 메트로폴리스 상하이. 와이탄의 화려한 야경과 푸동의 미래지향적인 스카이라인은 이 도시가 얼마나 빠르게 앞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지를 웅변한다. 하지만 이 눈부신 콘크리트 숲을 조금만 벗어나면, 완전히 다른 속도로 흐르는 시간이 존재한다. 붉은 담장 하나를 경계로 현대의 소음이 거짓말처럼 사그라지는 곳, 바로 명나라의 숨결을 간직한 정원, 예원(豫園)이다.

화려한 상업 가인 예원 상성의 북적이는 인파를 헤치고 정원의 입구로 들어서는 순간, 공기의 밀도가 달라짐을 느낀다. 번잡한 세상 속에서 홀로 고요를 품고 있는 예원은 단순히 잘 가꾸어진 공원이 아니다. 그것은 수백 년 전 한 효자의 간절한 마음이 지어 올린 거대한 수묵화이자, 자연을 집 안으로 들이고자 했던 중국 전통 정원 예술의 정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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