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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구석에서 "나 좀 봐줘..."라며 아련한 눈빛을 보내고 있는 일본 에도 시대의 화조도 병풍

복다미 2026. 6. 8. 23:44

가을·겨울 컬렉션인데 봄·여름은 어디 갔냐고? ( 반쪽짜리 화조도 이야기)
 온갖 민화와 옛 그림의 매력에 푹 빠져 살며, 붓끝으로 조선과 에도를 오가는 야매(?) 화가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씹고 뜯고 맛볼 작품은 국립중앙박물관 구석에서 "나 좀 봐줘..."라며 아련한 눈빛을 보내고 있는 일본 에도 시대의 <화조도 병풍(오른쪽 폭)>입니다. 아니, 이름부터가 벌써 '오른쪽 폭'인 게 아주 눈물 없인 볼 수 없는 막장 드라마의 서막 같지 않나요?

일본 에도 시대의 화조도 병풍(오른쪽 폭)
일본 에도 시대의 화조도 병풍(오른쪽 폭)


 "여보, 짝꿍은 어쩌고 혼자 왔어?" : 강제 이별 당한 병풍의 사연
자, 이 병풍의 스펙을 보면 가로가 무려 371cm에 달하는 거대한 녀석입니다. 

그런데 내용을 보니 국화, 대나무, 매화가 그려져 있네요. 동양화 좀 보신 분들은 딱 감이 오시죠? 맞습니다. '가을과 겨울'입니다.


"원래 이런 병풍은 '사계절 치트키'라 봄·여름·가을·겨울이 다 있어야 정상이거든요? 근데 이 녀석은 지금 가을이랑 겨울만 있어요. 네, 맞습니다. 봄이랑 여름을 담당하던 '왼쪽 짝꿍'은 기나긴 역사 속에서 가출했거나, 어디선가 솔로로 독립해 살고 있는 게 분명합니다."

지금 이 병풍은 마치 패딩이랑 코트만 잔뜩 들어있는 반쪽짜리 옷장 같은 상태인 거죠. 사라진 봄·여름 병풍아, 너 지금 어디서 뭐 하니? 보고 싶다...

2. "이게 바로 에도 스타일 마초 액션!" : 도끼로 팍! 부벽준 기법
그림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꽃과 새가 그려져 있어서 되게 여리여리할 것 같지만 웬걸? 바위랑 나무 표현이 아주 거칠고 상남자(?)스럽습니다.

여기서 쓰인 기법이 바로 부벽준(斧劈熢)인데요.
한자가 어렵다고요? 쉽게 말해서 ‘도끼(斧)로 나무를 쪼갠(劈) 듯한 거친 느낌’을 주는 수묵화 기법입니다.
조선 민화의 매력: "허허, 호랑이도 웃고 까치도 웃고 우리 모두 다 함께 웃어봐요~" 하는 둥글둥글 해학미.
이 에도 병풍의 매력: "어이- 내 묵직한 '진한 농묵(짙은 먹물)' 맛 좀 볼래?" 하는 무로마치 시대 선배들의 거친 액션 카리스마.
꽃그림인 줄 알고 다가갔다가, 도끼로 내리친 듯한 힙하고 락킹(Rocking)한 바위 표현에 압도당하는 반전 매력이 있는 작품이랍니다. 역시 옛날이나 지금이나 '반전 매력'이 최고예요.

일본 에도 시대의 화조도 병풍(오른쪽 폭)
일본 에도 시대의 화조도 병풍(오른쪽 폭)



만약 이 그림을 그린 에도 시대의 무명 작가가 타임머신을 타고 2026년 오늘날로 온다면,

아마 인스타그램에 이렇게 피드를 올렸을 겁니다.
🛠 @Edo_Artist_99: "오늘도 도끼 기법(부벽준) 개빡세게 넣었다... 크하, 농묵 미쳤다.

근데 님들, 제 봄여름 버전 병풍 가져가신 분 DM 좀 주세요.

짝을 잃어서 마음이 시립니다. #협찬환영 #솔로스타그램"

비록 반쪽만 남은 쓸쓸한 신세지만, 그 덕분에 우리는 사라진 봄과 여름의 새들은 얼마나 더 화려하고 예뻤을지

상상하는 재미를 얻었습니다. 완벽한 것보다 살짝 빈틈이 있을 때 더 매력적인 법이잖아요? 

다음에 박물관에서 이 <화조도 병풍>을 마주친다면, 슬쩍 윙크를 건네주세요. 

"너, 짝꿍 잃어버려서 속상하겠구나? 그래도 거친 매력은 살아있네!" 하고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