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안방극장을 뒤흔든 K-드라마의 원조?!"에도 시대의
‘하이퍼 리얼리즘’ 병풍 <겐지모노가타리 병풍>

안녕하세요, 전 세계의 자극적인 스토리를 찾아 헤매는 방구석 드라마 평론가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그림은 일본에서 날아온 초대형 6폭 병풍, <겐지모노가타리 병풍>입니다. 가로 길이가 무려 350cm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녀석이죠. 이 거대한 종이 위에 그려진 내용이 뭐냐고요? 바로 일본의 ‘김수현 작가’ 혹은 ‘임성한 작가’라 불리는 무라사키 시키부가 11세기에 쓴 세계 최초의 장편 소설 『겐지 이야기』의 에피소드입니다.

주인공 ‘히카루 겐지’라는 녀석은 얼굴 하나로 전 세계를 평정한 초절정 미남인데, 연애관이 아주 막장입니다. 아버지의 후궁을 사랑하질 않나, 그 후궁을 닮은 어린 여자아이를 납치(?)하듯 데려와 자기 취향대로 키워서 결혼하질 않나... 요즘 넷플릭스에 나오면 바로 ‘청소년 관람 불가’ 딱지 붙을 마라맛 스토리죠.

이 병풍은 그 소설 속 수많은 에피소드 중에서도 가장 핫한 에피소드 두 개를 골라 좌우에 배치했습니다. 그런데 이 그림을 그린 에도 시대(17세기)의 화가 도사 미츠오키 학파의 제자분이 아주 발칙한 짓을 저질렀습니다.
원래 이 소설의 배경은 11세기 헤이안 시대입니다. 그럼 등장인물들이 신라시대나 고려시대 옷을 입고 있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그림 속 여성들의 옷을 보니, 웬걸? 17세기 에도 시대의 ‘최신 유행 패션’인 기모노를 입고 런웨이를 걷고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사극으로 치면 이순신 장군님이 조선 시대 갑옷 대신 지오다노 셔츠에 리바이스 청바지 입고 한산도 대첩을 지휘하고 있는 꼴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화가가 고증을 몰라서? 천만의 말씀입니다. 화가는 영리했습니다. "야, 옛날 옷 입혀놓으면 지금 사람들이 공감하겠냐? 요즘 유행하는 힙한 에도 스타일로 입혀야 아줌마들이 '어머, 저 옷 너무 예쁘다!' 하면서 그림을 사지!" 하는 ‘상업적 치밀함’이 숨어있었던 거죠. 고증을 파괴하고 현대적 감각을 때려 박은 17세기 판 패션 매거진, 이 막장 로맨스 병풍을 거실에 펴놓고 손가락질하며 수다 떨었을 에도 시대 사람들의 모습이 상상되지 않으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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